변화하는 조선족 자치주 연변 (延邊 朝鮮族 自治州)

차홍규 작가의 중국이야기 [8]

차홍규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1/05/31 [22:08]

변화하는 조선족 자치주 연변 (延邊 朝鮮族 自治州)

차홍규 작가의 중국이야기 [8]

차홍규 칼럼니스트 | 입력 : 2021/05/31 [22:08]



지금 우리 조선족 자치주(延邊 朝鮮族 自治州)인 연변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최근에 다녀온 연변은 중국의 경제발전에 힘입어 새로운 물결에 호응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연변은 인구가 총 230만 명 정도로 중국에서는 아주 작은 지역이다. 주도(州都)는 옌지시[延吉市]로 조선 말기부터 우리 한국인이 이주하여 개척한 곳으로 이전에는 북간도라고 불렀다.

 

195293일에 자치구가 설립되고, 195512월에 자치주로 변경되었다. 옌지[延吉], 투먼[圖們], 둔화[敦化], 허룽[和龍], 룽징[龍井], 훈춘[琿春]6개시와 왕칭[汪淸], 안투[安圖] 2개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구 구성은 조선족이 41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한족(漢族만주족(滿州族후이족[回族]의 순이다.

 

조선족은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韓民族) 혈통을 지닌 중국 국적의 주민들을 가리킨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민족 분류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56개 민족 가운데 조선족이 13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조선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법무부의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가 작성하는 통계 자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韓國系中國人)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중국 내 조선족은 200만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대부분 인구가 중국 동북지방의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즉 동북삼성(東北三省)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었으나 한국과 수교 이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전국에 땅을 잃은 농민과 생업을 잃은 조선인들이 생겨났고, 이들 중 일부는 만주(滿洲)지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이주한 조선족들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산림을 개척하면서 생활 터전을 만들어 갔다. 더욱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이 잇달아 일어나 조선에서는 인적·물적 수탈이 극심해졌고, 조선인의 만주 이주는 더욱 많아졌다.

1945815일 일본이 패전하였으나, 얼마 후 남북이 분단되고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많은 조선족은 그대로 동북지방 등에 남게 되었고, 현재는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중국 국적을 소유하며 살고있다.

 

 

조선족은 잘 알다시피 한국말과 중국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 그들의 표현으로는 외국어인 한국어를 함께 사용할 줄 아는 중국의 국민이다. 우리는 그들이 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중국 사람이다. 한국과 중국 간에 국제축구경기가 벌어진다면 자국인 중국 선수를 응원하며, -중간에 첨예한 사건이 벌어지면 중국인의 입장에서 분노를 나타내고, 당연히 세금도 중국 정부에 낸다. 

 

중국에서 태어나고 중국인으로 살아온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같은 국민으로 착각하는 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족이라 부르면 왠지 비아냥거림처럼 생각하지만, 중국에서는 신분증에 조선족이라고 표기할 만큼 자연스럽다. 중국 본토민인 다수의 사람은 한족, 기타 만주족, 회족, 몽고족 등등 출신을 신분증에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아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조선족이라 부르면 낮춰서 부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중 수교 이후 많은 한국의 기업인들이 중국에 진출했지만, 마음만 급하고 중국 관습에 어두웠다. 그 결과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조선족에 도움을 받다가, 일부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로 조선족에 대한 원망이 나쁜 소문으로 퍼졌고, 결과적으로 일부에서는 나쁜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은 반대로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한국에 온 조선족 중 일부사람은 열심히 일하고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불법체류자 신분이기에 어디에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당해도 아무 말 못하다 보니 한국인에 원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상호간 이렇게 안 좋은 일들이 있다 보니 우리와 조선족 사이에 일부이지만 불신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중국에 진출한 사업가들이 조선족에게 통역을 부탁하고는 뒤에서 불안해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해법은 간단하다. 통역할 때 녹음을 하고, 그 녹음을 제3자에게 들려주어 통역이 제대로 됐는지 검증하라고 권한다. 이렇게 하면 통역에 대한 잘잘못을 바로 파악할 수 있어 불안감을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중국 현지에서 사업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중국어에 대한 학습은 필수라고 말하며 중국어를 배울 것을 강하게 권장한다. 

 



현재 조선족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발전으로 한국으로의 취업과 한국인 관련사업 및 관광통역 관련, 중국 현지의 취업 등으로 많은 인원이 조선족 마을을 떠나고 있다. 연변 같은 조선족 집단 거주 지역이었던 곳들도 이제는 조선족의 수가 줄면서 한족의 수가 더 많아졌다. 또한, 경제적으로 부부가 독립되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이혼율이 급격히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몇 해 전 마음 맞는 한국의 지인들이 의기투합하여 (조선족을 위하여) 연변대학에 귀금속 공예과를 만들어주면서 많은 장비와 물자를 도와준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학생 수에서 조선족은 얼마 안 되고 본토민인 한족들이 대부분이어서 결과적으로 조선족을 위한다며 벌인 사업이 마음은 아프지만 주객이 전도된 사례도 있을 만큼 중국의 조선족 사회도 변화를 겪고 있다.

 

중국의 명절인 구어칭지에(國慶節)101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기념일이다. 중국공산당이 국민당 세력을 타이완으로 패퇴시키고 194910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음을 선포한 날로 중국은 휴무에 들어간다. 작년 101일부터 7일까지 연변을 찾은 중국인은 20만으로 같은 기간 우리나라를 찾은 중국의 요우커들과 비슷하다.

이는 대단한 숫자로 우리나라는 요우커가 많이 왔다고 대대적으로 환영하였지만 겨우 일개 자치주를 찾은 정도의 인원이다. 특히 돈 많은 중국의 남방 사람들이 주로 연변을 찾았는데 이들이 먹고 마시고 쇼핑한 금액만도 엄청나다.

 

,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를 찾는 요우커 인구와 같은 인원이 연변으로 몰리니 그들의 소비로 연변은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연변자치주는 원래 공업도시를 추구하였으나 이러한 관광수요에 힘입어 2016년부터 새로 시작하는 중국 제 135개년 계획에서 공업지역을 추구하려하였으나 공업지역'대신 이제는 다국경 국제 관광지역으로 변경하여 대대적인 발전을 도모하려하고 있다.

 



이제는 조선족사회도 대국적인 안목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정에서 만난 천우그룹(연변 공공건축의 60%를 점유하며, 그 외 무역, 유통 등과 북한에 광산 채굴권을 소유)의 리용석(조선족)회장은 필자에게 우리 한국인과 조선족이 힘을 합쳐서 거국적인 협력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 내용인즉 우리 동대문이나 남대문 같은 대규모 의류 및 기타 한국 상품 쇼핑센터를 연변자치주 수도 연길에 설치하여 몰려오는 중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국인과 조선족의 공동 번영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연길시내의 장소까지 물색 되었으나 저 같은 예술인 보다야 서울시장이나 중구나 동대문구의 구청장 또는 기업인들이 앞장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한국에 조선족 분들이 많이 와서 주로 3D 업종에 근무를 많이 하는데, 실상을 알고 보면 일하는 대부분의 조선족 분들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도 많다. , 한국에서 악착 같이 번 큰돈으로 중국의 생활에 크나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분들은 한국이 그립기도 하여 한국에 오지만, 와서는 특별하게 할 일도 없으니 한편으론 돈도 벌고 한편으론 유흥도 즐기다가 중국으로 돌아가서는 몇 개월씩 유유자적하게 쉬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그분들이 자국 연변으로 귀국하여 시청하는 TV는 당연히 한국방송이고 옷이나 일용품 심지어 문구점에 가도 온통 한국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고, 또한 애용하고 있다. , 그들은 한국 마니아로 중국의 일선에서 우리 한국을 홍보하여 주는 일등 공신들이다.

 

이번에 연변을 가서 놀라운 것이 서시로 유명한 우리의 시인 윤동주 -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를 다니다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학교가 폐쇄 당하자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학원의 중학부를 졸업하였고,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다니다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 중 사망한 시인으로 중국 정부와 연변자치주에서는 항일운동의 대표적인 조선족 인물로 묘사하여 생가에 커다란 석재를 이용하여 서시의 시비를 세웠고, 모교인 용정의 대성중학교에도 그의 동상과 시비를 세워 관광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격변하는 시대에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는 중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 그 중에서도 우리 동포들이 밀집하여 살고 있는 연변자치주 수도 연길의 조선족들. 그들은 우리와 조상이 같은 한민족으로 우리 동포들이다. 우리와 그들이 손잡고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을 하여본 여정이었다.

 



 

 
 다음은 북한과 가까운 단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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